 부유하는 것들 : 잔재와 흔적의 게임 부유하는 것들 : 잔재와 흔적의 게임
엄혁(미술평론가)
1.
자본주의는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문화적 모순은 심화되어 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감 수성이 이러한 문화적 모순을 반영하면서 광고문화, 소비문화, 구경거리문화, 정신분열문화, 짜집 기 문화등의 현상이 극대화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모순은 사회의 분리되어 있는 세 영역 중에서 정치와 경제의 담론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문화(예술)의 담론에 기인한 것 같다. 경 제적 모더니즘 혹은 정치적 모더니즘은 우리의 봉건적 의식을 정리해줄 수 있는 진보적이며, 긍 정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문화적 모더니즘은 사람들을 위한 개념이 아닌 것 같다. 문화적 모더니 즘이 혁명적인 것 같지만 그 내면의 메카니즘은 봉건적이고 전통적이다.
2.
자본주의 사회의 내부가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토를 달 사람들 역시 이제는 없을 것 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정치는 정치대로, 문화는 문화대로 그리고 돈은 돈대로 독특한 담론 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영역들은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 영역이 발전 하면 할수록 자본주의의 모순은 심화된다. 그 이유는 각 영역이 아무런 유기적 관계없이 분리되 어 있기 때문이며, 이렇게 분리된 영역이 제각기 발전한다는 것은 사회의 분열화와 파편화가 더 욱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3.
일반적인 대중(현실)매체를 생각해 보자. 문화산업이라고 우리가 치부하는 여러가지 대중(현 실)문화속에서 우리는 동시대의 수려한 형식, 빼어난 감각, 진보적인 메시지, 명랑하고 경쾌한 진 행, 그리고 풍부한 돈에 의한 매체 혹은 형식의 적절한 활용 등을 찾아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물론 그 아름다운 조화를 말 그대로 가짜 꽃(造化)이라고 생각하면 우리 의 문화적 적들은 명쾌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 반영되는 우리의 모습을 읽어보자. 연필 한 자루, 혹은 빠레트 위의 물감과 붓 한 자루가 전부인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쓸쓸하다. 이렇게 쓸 쓸하게 만들어내는 신화의 꽃이 진짜 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우리의 종교적인 신념이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와 같은 가짜 이미지들을 읽어내려고 노력할 때마다 우리 스스로 수동 적 냉소주의자, 자멸적 허무주의자, 혹은 중세기적 예술가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우리 자신을 발견 하곤 한다.
4.
탈 현대는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이미 파괴된 것의 잔재 / 흔적을 갖고 즐 기는 게임이다. 역사가 멈춰졌기 때문에, 일종의 의미없는 탈역사 속에 우리는 존재한다. 누구도 이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안에서 부유해야만 한다. 마치 중 력의 원 속에 있듯이, 우리는 더 이상 진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불행만 은 아니다. 차라리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역사나 진보의 조언 모사화 경향이 단순히 비인간화 라는 종말론적 계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새롭게 가능한 인간경험을 얘기하는 긍정적 기회이자 가 능성의 장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의식의 전환 속에서 진보의 개념은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5.
현재 대중매체의 대 사회적 기능 혹은 예술문화적 기능이 더욱더 높아지는 이유는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독특함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예술의 대사회적 기능 혹은 예술문화적 기능 을 예술이 스스로 포기한 것에도 그 이유가 있다.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잘 생각해 보면 그것이 경제적 모더니즘 혹은 정치적 모더니즘에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문화적 모더니즘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최소한 자본주의 사회 속의 정치와 경제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과 같이 있었다. 그러나 예술은 사람들을 버렸다. 모더니즘의 문화논리가 하늘을 향해 일상 을 떠나 버렸을 때 땅에 남겨진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의 충족은 '돈'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산업'의 책임은 그 산업을 주도한 돈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버린 예술한테 있는 것이다.
6.
현재 예술의 형태인 '독립된' 혹은 제도화된 예술은 (시청율 혹은 판매율로 그 존재 당위성 이 결정되는) 문화산업과 다르게 '미학'이라는 영역 속에서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리고 그것의 대 사회적 기능은 용인 민속촌의 기능과 같다. 일상과 현실이 아니면서 일상의 사람들에게 그 어떤 문화적 기능(현실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기능)을 하는 용인의 민속촌은 예술의 대 사회적 기능 과 같은 것이다.
7.
동시대 문화산업은 기존하는 혹은 기존했던 여러 가지 이미지들과 형식을 재해석해서 활용한다. 전유와 도용에서 예술적 혹은 미학적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문화산업이 전유하는 오리지날 이 미지 / 텍스트는 문화산업의 재생산을 위해 즉각적으로 그 이미지 / 텍스트의 의미가 변화된다. 그러나 우리의 예술언어는 기본적으로 전유와 도용을 금기시하고 있다. 그것이 창작의 논리인데 이것은 예술의 천재성과 밀접해 있는 예술적(허위) 의식이다. 또한 대중매체는 기본적으로 소통을 의미한다. 대중매체가 예술처럼 자연을 묘사하거나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대중 매체의 소통노력과 대중매체의 경제성, 곧 소통의 효율성과 유효성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 에 형식, 장르, 매체 등은 이러한 목적의 하위개념이 된다. 따라서 대중매체는 예술의 독창성과 유일성 그리고 천재성이라는 예술적(허위) 의식을 애시당초 버렸다. 이러한 태도의 선택은 (좌파) 문화생산자가 배웠어야 할 태도이다. 사실 어떠한 이미지 / 텍스트이든 그것 혼자 창조되었거나 혹은 독야청청 혼자 존립할 수 없다. 어떠한 이미지 / 텍스트이든 시간적으로 그 이전에 존재했 던 이미지 / 텍스트와 무관하지가 않다. 현재의 이미지 / 텍스트를 억압하든, 반동하든, 혹은 계승 하든 어떠한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 오리지날은 없다. 또한 같은 맥락에 서 예술의 독창적인 창작 / 창조는 허위이며, 신화화된 예술의 한 측면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천 재와 오리지날의 신화인 것이다. 이런 모든 맥락에서 볼 때 대중매체는 동시대에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리얼리즘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한다. 동시대 예술가 / 작가들이 대중매체에서 이러한 태 도들을 배웠다면 그래서 예술이 땅위로 다시 내려온다면 사람들이 예술을 대중매체처럼 사랑할 것 같다.
8.
현재 사람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문화 그리고 자신들의 감수성을 대중, 대중문화 등의 개념으로 서 평가당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듯 하다. 사람들과 문화산업과의 위악적인 관계는 평가 받는 자기존재에 대한 대문화적 분노일 수 있다. 실제로 엘리트, 고급문화 등의 개념은 정확히 사 람들의 문화를 억압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반대편에 있는 개념에 의존(억압은, 곧 의존한다는 말 이다)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엘리트와 고급문화는 그 반대편에 있는 개념을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위대해지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역사적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 특 권에 대해 보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보복이 가능한 것은 우리의 지배문화가 '돈'이 라는 환경과 조건이기에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 보복은 문화산업의 천박성이 대리수행하고 있 다. 사람들의 감수성 변화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기도 한다.
1) 성(聖)의 영역에서 속(俗)의 영역으로
2) 과도한 타율대상에서 점차 증대하는 자율의 경향
3) 세계관이 그 인식적 실재를 방기하고 (우주론이 순수한 도덕체계로) 변화되는 경향
4) 부족(部族) 특수주의에서 보편주의적, 그리고 개인주의적으로 전환
5) 신화에서 출발해 교의 계시종교 이성종교를 거쳐 이데올로기에 도달하는 과정에 서 알아첼 수 있는 신앙양태에 대한 반성
9.
사람들은 자신들을 소외시킨 사회에 대해 비사회적인 모습으로 항변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종종 무질서, 무의미, 비이성적인 행위로 이어진다. 소외 속에서 사람들의 사회적 참여와 쌍방소통에 대한 의지와 요구는 여지없이 묵살당했다. 그럴 때 이러한 의지와 요구는 비사회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문화산업은 사람들의 사회적 참여를 유도했다. '소비(소비는 사회참여의 한 가지 방법이다)라는 사회적 행위를 사람들에게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의 심성을 다 독거리는 문화산업은 무질서, 무의미, 그리고 비이성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일종의 동질성 을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사회에 항변해서 위악적인 모습을 종종 보이는것처럼 문화산업 역시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해서 위약적(그러나 문화산업의 이러한 태도는 위선적이다)일 때가 많다.
10.
사람들은 문화산업이라는 바위 틈에서 그리고 대중매체라는 돌 틈에서 문화적 자양분을 흡수하 며, 어렵게 성장하는 것이다. 조용필의 '노래'에서, 김수현의 '드라마'에서, '이발소 그림' 속에서 그 리고 '여타의 광고' 속에서 사람들은 문화적 요소를 흡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중문화의 파편 들 틈속에서 사람들은 '진선미'를 찾아내어 소중하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의 선택에 의한 '판매율', '시청율' 등에 의해 이러한 문화는 지탱되는 것이다.
11.
문화산업이 만들어 내는 이 사회는 구경거리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구경거리 들을 같은 환경으로 널부러져있는 이미지들을 어떠한 각도이든 혹은 어떠한 차원이든 흡수한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한 흡수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의 흡수가 아니다. 만일 사람들이 이미지들을 흡수(사전적 의미로서)한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허위의식에 빠져있거나 분열되어 있어야 한다. 사 람들은 이미지들을 흡수하지만 그 이미지들을 사람들의 내부에 두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미지 들의 거침없는 돌진에 대한 거부는 충돌을 의미하며 그 충돌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잇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이미지를 마치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것이다. 이것이 동시대 사람들이 스스로 개발한 이미지 다루는 법이며, 이 방법은 바로 이미지들을 거부하는 방 법이기도 하다. 이미지의 흡수는 이미지의 거부이다.
12.
우리가 여태까지 의존했던 이론적 질서에서 현재의 구조가 탈출했을 때 사람들의 감수성 역시 자 연스럽게 우리으 분속틀 거리 밖으로 탈출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제 사람들은 널부러져 있는 이 미지 속에서 자기의 몫을 정확히 챙기는 (이미지들을 흡수하면서 그 이미지들의 작은 부분을) 능 력이 생긴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 흡수의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떠한 이론이든, 지시 적인 언어이든 혹은 광고의 유혹이든 그것들을 (거부) 흡수하게끔 하기도 한다. 차원은 틀리지만 진보적인 이론 그리고 도덕적 언술의 선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새로운 능력은 이와 같 은 모든 이미지들을 (거부) 흡수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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