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아시아의 지금》전은 규모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마는 요즈음 화단 세태에 따르면 초라한 전시일 수 있다. 그러나 전시공간을 만들어 내는 큐레이팅의 창의성이나 작품들의 종다양성을 적절하게 배치해내는 기획력으로 물적 규모를 넘어서는 내용을 이 전시는 보여준다. 적어도 전시의 형식적인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을지라도 보기 좋은 전시가 되었다.
 
이 전시의 기획 의도는 간결하다. ‘세계성과 지역성’을 아시아에서 질문한다. 주제이자 전시명칭인 <아시아의 지금>이라는 의제는 말 그대로 항상 ‘지금’에 대해 의식하되 모든 것이 이 ‘지금’에 발목 잡혀있음으로 질문만은 정당해 진다. 그런 의도에서 ‘세계성과 지역성’은 너무나 도식적인, 그러나 간결한 질문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어떤 곳에서, 제 스스로 거부하지 않는다면 세계성을 가지지 못한바 있으며, 언제 한번이라도 지역성을 떠나본 바 있는가. 그저 유럽-인도어권에서 호사부리는 현대사에 대한 반성의 말투일터인데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 질문의 내용을 단순화 시킬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 전시 주제는 그러나 완전히, 은폐되어 있다. 어떤 작가의 작품에서 그 질문은 개별적이며 특별하게 유효하지만 전시 전체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전시가 다루고자 했던 주제는 미술이 다룰 수 없는 의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언제나 미술에 터무니없이 과장된 의도를 덧씌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할 수 없는 일을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미술은 미술에 걸린 어떤 의제에 앞서 미술로 해석 되어져야 한다. 그 해석의 내용이 같은 지향을 보인다면, 같은 지향을 전제하고 해석하는 오류를 넘어 비로소 하나의 주제에 걸려 전시되어 질 것이다. 그 때, 더 이상 은폐된 주제는 없을 것이다.

이윤엽, <대추리에서>

전시는 세 개의 질문을 안고 있다. 그 질문들이 기획의 의도인지, 작가들의 우연한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전시를 보면서 그 질문들은 답을 함께 물고 있기도 하고 생뚱하게 던져져 있기만 한 경우도 있다. 도저히 답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이미 다 알고 있는 그러니까 답이 있음으로 더 이상 질문이 유효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 질문들을 드러내면서 전시를 재구성해 보자.(도저히 답할 수 없는 것은 제외하자. 그 질문은 이렇다. ‘내(작가) 관심사가 작품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의제는 (내)작품에 걸려있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이 유효한 작품이 몇 점 눈에 들어오는데, 분명한 것은 작가 섭외의 안이함이거나 잘못된 배려가 원인이다.)

하나, ‘아시아’는 ‘유럽’(또는 ‘서구’)과 대응하여 스스로 설계한 문화적인 쌍개념을 이루는가? 서구사회가 ‘우리’를 대상화한 통칭이기에 당연히 그들의 기획으로 인해 쌍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사실에 대해 질문을 거는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아시아’로 귀속감을 가질 때, 보다 정확한 명칭의 통일이나 공감이 아시아 내에서도 지역적으로 숙고되어야 하지만, 질문에 걸린 정체성이란 현재로선 비서구의 지역적 경계를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는 점뿐이다. 최소한 아프리카나 남미처럼 지역적 경계를 통해 구분되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아시아’는 그와 동시에 ‘서구’의 문화적 상황들과 변별되는, 정치적 경험들과 차별되는, 역사성의 기억이 아주 생소한 현대사의 차이를 통해 늘 ‘서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처럼 현대사 내에서 역사성의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에 ‘아시아’는 언제나 ‘서구식 관점’에 포섭되어 있거나 포획되어져 있다. 그럼으로 문화적 쌍개념으로 이해하는 ‘아시아’는 끊임없이 ‘유럽’을 의식하기 마련이다.

솔직히 말하자, 우리는 ‘아시아’를 크게 외치면서 유럽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구’의 말과 개념에 사로잡혀 근대를 통과한 아시아의 역사적 경험들은 그 개념들이 밑씨가 되어 이제 문화적 지향도 자연스럽게 서구로 정향되어 있다. 이 한심한 현실을 어떤 예술가가 부정하며 앞에 나설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스스로 독자적인 “존재 능력”을 그 가능성의 전체성으로서 인식하고 ‘아시아’를 설계해 내야 한다. 그리고 그 설계를 통해 문화적 쌍개념이라는 지평을 확인하면서 ‘아시아’를 다시 질문해야 하는 과제를 안아야 한다. <아시아의 지금 : 세계성과 지역성>에서는 의제 안에 이 질문이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질문이 드러나지 않는다.

후이 누엔 후, <스테이트먼트>(베트남)

둘, ‘아시아’로 묶여지는 역사적 공동체 경험은 아시아의 예술(가)에게 어떻게 역사성을 요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진부한 답은 은폐되어 있다. 제국주의 물결이 지금 지구가족이라 부르는 ‘우리’ 모두를 위협하던 시기에 아시아는 서구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었다. 이 사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언제나 하나의 역사인식 안에서 공동체적 유대감을 끌어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사건만을 쉼 없이 상기시킨다면, 그래서 현재의 사태를 직시할 수 없다면 우리 안에서 역사성은 스스로 조금씩 소멸되어 갈 것이다. 이 긴박성은 유독 예술(가)만이 다루고 긴장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국적을 떠나 저마다 기억하는 하나의 역사적 소자 즉, 사건에만 집착한다.

작품에서 다루는 역사적 소재나 역사주의에 달려가는 작품들의 경향은 작가의 역사에 대한 태도로서 진지함만을 요구함으로써 오히려 사태를 해석하는 설계능력을 앗아가고 만다. 자신에게 도래할 것으로서 미래를 언제나 지금 설계하고 기획하듯이 예술(가)에 있어 역사성은 과거-현재 그리고 결단으로서 미래를 열어 보이는 그 설계의 상태(=작품)를 검토하고 확인해주는 잣대가 된다. ‘아시아’의 역사적 공동체 의식은 그럼으로 개별화된 개체로서 예술가에게 자신의 작업에 현현되는 그 내용에 역사성을 지니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사건을 기억하는, 기억하게 하는 작품들은 많다. 그러나 사건을 재현한 작품 앞에서 우리는 기록 이상의 의미연관을 지니지 못하고 작품과 결별한다. 아시아에서 예술(가)에게 있어 ‘지금’은 앞으로도 계속 잊혀지는 ‘역사의 기획된 시간’을 추적함으로써 작품으로서 결단 앞에 공동체다움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셋, ‘아시아’는 왜 ‘지금’에 질문을 거는가? 비단 전시명칭이 그러해서 이 질문이 유효한 것은 아니다. 작가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지금’을 의식하지 못한 채, ‘지금’에 대해서만 언술한다. 그 점은 예술(가)에 있어 다른 여타의 사회 장르에 비견되는 큰 특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전시 의제로서 ‘지금’과 예술(가)에 있어 태생적으로 다루고 있는 ‘지금’은 너무도 다른 지평을 지니고 있다. 예술이 다루는 ‘지금’은 언제나 실존론적 배경을 지닌다. 그러나 전시 의제가 내세운 ‘지금’은 “세계”를 드러내는 실존방식에 국한된다. 당연히 질문의 유효성은 예술의 실존론적 질문이다. 따라서 이 전시를 통해 우리는 “왜 ‘아시아’가 지금 ‘지금’에 문제를 걸고 ‘지금’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물어보는가?” 질문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아야 한다.

신주꾸 노숙자 프로젝트 그룹, <보드지 하우스>(일본)

전시장에서 작가들은 제 각각 자신의 실존적 방식으로(작품으로) 실존론적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지적되어야 할 문제는 바로, 작가들이 제 각각 다루는 실존론적 ‘지금’에 어떤 공통적 의미연관성을 부여할 것인가이다. 질문도 답도 빠져 있다. 작가들은 선(善)한 의지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 자신의 관점은 언제나 실존론적으로 정당하다. 항상 ‘지금’을 물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한 의지가 늘 정당하지는 않다. 전시는 기획에 의해 정당하고 타당한 의제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시아’를 구성해내는 작가들의 공통적 관심사가 2006년이라는 ‘지금’이거나 최소한 ‘지금’에 갇힌 “시간성의 상태”에서 받아들일만한 내용을 보여주었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늘 ‘아시아’가 ‘지금’을 질문할 수 있다. 그것은 다만 다수를 대변한다는 소수의 경고로써 정치적으로 그럴 뿐, 소수가 그대로 소수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예술(가)의 동의와 일치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래서 항상 실존적 배경이면서 동시에 실존론적으로 위기에 놓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