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최대 위기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의 주도권을 쥐며 민주당 등 야권이 끼어들 틈새도 주지않고 돌진하는 바람에 민주당은 정국의 '종속변수'로 전락하고 있다.

민주당은 비판.비난을 할지언정 반대를 하기도 여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운찬 총리 카드는 민주당의 뒤통수를 해머로 내리칠 정도여서 민주당은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와 6개 부처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나오면서 이번 '9.3개각'에 대한 민주당의 반응은 어설프다.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말할 것도 없고 오죽하면 노영민 대변인조차 "소신과 철학이 다른 사람이 변절했다" 정도의 논평을 냈을까?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여권은 지난 7월 미디어법 강행 처리를 계기로 4월 재보선 참패 정국을 돌파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정국까지 유리한 국면으로 만들며 야권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 심상찮은 내홍…당권 다툼, 수면 위로

이런 와중에 민주당의 워크숍은 내홍이 심상치않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세균 대표가 너무 중도 성향이이서 대여 투쟁에 온건적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워온 민주당 내 강경파 의원들, 특히 정동영계 의원 일부가 조기 전당대회론까지 들먹이며 정 대표을 압박했다.
여기에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등이 친노 세력의 결집을 외치며 정치결사체(시민주권모임) 활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민주당 중심의 야권 통합론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어 결국은 합칠 가능성이 있지만 일정 시점(차기 대선이나 총선, 짧게는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는 각자도생을 모색할 공산이 커 보인다.

또한 민주당 복당을 강력히 원하고 있는 정동영 의원과 한화갑 전 의원 등이 연합전선을 형성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친노 직계나, 정동영 의원 측 모두 정세균 대표의 민주당 지도부를 겨냥하고 있다. 이는 야권의 당권 다툼이 물밑에서 수면 위로 올라왔음을 의미한다.

야당의 존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정열차를 거침없이 내몰고 있는 여권의 공세를 막아내기도 바쁜 민주당 지도부는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당 내에 전의를 상실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3일 워크숍에 참석했던 한 중진 의원은 "지난해 정기국회를 앞둔 민주당 워크숍은 서로 격려하고 단합하자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뤘으나 어제 워크숍은 헐뜯는 모습이 나타나는가 하면 패배주의 같은 미묘한 기류도 있었다"고 전했다.

현재 20% 중반에 머물고 있는 민주당 지지율이 또다시 10%대로 추락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민주당의 원심력들은 이 위기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적이나, 경쟁자의 불행은 나의 행복까지는 아닐지라도 나의 기회임은 인생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너무도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 범야권 결집으로 몸집 불려라

이러한 민주당 위기 국면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결론은 분명한 정답이 보이질 않는다. 민주당 관계자들이 기자들에게 "이 국면을 어떻게 헤쳐나야 하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점령당한 중도.실용, 친서민 노선을 어떻게 하면 되찾아올 수 있느냐?"고도 질문한다.

정동영 의원을 입당시키고, 친노 세력, 동교동계 인사들과의 통합이라는 범야권 결집을 통해 몸집을 불리자는 의견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럴 듯하다. 민주당과 친노, 동교동계와 힘을 합치면 거대 여당의 세력에 대항할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통합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는 논리가 강하다.

친노가 우선 순위이고, 정동영 의원은 차 순위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으나 친노와 먼저 합치고 나면 정동영 의원의 입당은 자연스러워진다. 친노의 입당은 영남 교두보는 물론, 친노이면서 민주당 지지세력이 아닌 일부 세력이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다.

민주당의 외연 넓히기는 호남보다는 영남 등 다른 지역이 우선인 게 바람직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어선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이와 관련해 박주선 최고위원과 박지원 정책위 의장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대동단결에서 정동영 의원이 예외가 될 수 없다"며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친노 그룹과도 이념적, 인간적으로 간극이 너무 많이 벌어졌으나 양보를 해서라도 함께 가는 것이 민주당에겐 유리하다고 말한다.

◈ 뉴민주당 플랜 재가동…국민과 대화하라

또 뉴민주당 플랜을 다시 가동해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 친서민 행보와 전면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견해다. 맞는 말이다. 일본 민주당이 생활정치를 구사해 자민당의 아성을 무너뜨린 것처럼 민주당도 주민.생활 속으로 파고들면 승산이 있다.

그러나 언론이 주목을 하지 않는다. 정세균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가 제 아무리 민초들에게 다가갈지라도 언론은 주시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면 대다수 국민은 민주당의 서민 다가가기를 알 길이 없다. 야당의 한계다.

지금의 민주당은 이회창 총재 시절의 한나라당이 아니다. 지역적으로나 의석수로나 야당이라고 하기엔 소수이고 웬지 초라해 보인다.

그럴지라도 국민와 끝없이 대화하고 호흡을 함께 하면 언젠가 알아줄 것이다.

미국 민주당이 지난 2000년 정권을 공화당에 빼앗긴 뒤 8년 동안 절치부심하며 민주당 기본정신과 정책으로 부시 행정부를 견제해 버락 오바마 정권을 압도적으로 탄생시켰다. 물론 오바마라는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념적 코드의 클릭(소총의 영점 조준)을 중도 쪽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국정의 방향 클릭을 전통적인 민주당 영역이랄 수 있는 중도 좌로 이동한다면 민주당은 반대로 중도 우로 조절할 필요성이 있다.

상대 진영을 파고 들어야 파이가 커지기 때문이리라. 그런데도 민주당은 계속 민노당 영역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더욱 왜소해질텐데도 말이다.

민주당 내 이념적 강경파들의 반대를 모릅쓰고서라도 당의 존립과 재집권을 위해 클릭을 조절해야 한다는 게 민주당 내 상당수 의원들의 견해다.

◈ 칭찬으로 인물을 발굴해 키워라

이러한 조치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물을 발굴해 키우는 일이다.

민주당에는 걸출한 차기 주자가 없다. 정세균 대표와 정동영 의원, 손학규 전 대표, 이해찬 전 총리, 송영길, 박주선 최고위원 등이 서운해할지 몰라도 국민이 차기 지도자감으로 아직은 생각하지 않는다.

대국민 지지율 10%가 넘는 정치 지도자가 민주당 내에 있는가? 야당 내에서조차 바로 이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가를 곰곰이 고민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그들이 민주당의 당권을 놓고 싸우면 국민은 웃는다. 그 야당 내에서 뭐가 그렇게 먹을 게 많다고 싸우냐고 핀잔을 할 것이다.

내가 당권을 잡으면 잘할 것 같지만 정국의 환경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 헐뜯고 내가 잘났다고 나서기 보다는 서로를 추켜세워 서로를 키워주는 일이다. 민주당 지도자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누구를 죽이면 자신이 크는 상황이 아니라 서로를 칭찬함으로써 어려움에 처한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판단된다.

정동영 의원이 정세균 대표를 볼 때, 야당을 너무 잘못 이끈다고 판단할지 모르겠으나 생각을 바꿔 이런 상황에서 이만큼 끌고 온 것도 대단하다고 판단하고 추켜세우면 그 공의 절반은 자신의 것일 수 있다.

정세균 대표도 마찬가지다. 작금의 국면에선 정동영 의원이나 이해찬 전 총리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공언하면 포용적 이미지가 돋보일 것이다.

서로 칭찬하고 추켜세우기를 통해서면 상생할 수 있고, 누군가는 대권 후보 반열로 올라설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장을 치름으로써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갔다.

더욱이 지금은 죽고살기식 경쟁을 한 3김 시대가 아니다.

이 틈을 타 누군가는 후일을 도모할 것이다. 한국의 오바마를 꿈꾸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