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진보의 개념이란 무엇인가? 90년대 진보의 개념이란 무엇인가?
라원식(미술평론가)
우리는 십사오륙년 동안 진보적 지식인임을 자처하면서 꾸준히 이 땅의 민중운동에 동참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90년대 진보의 개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보니 당혹스 럽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우리 모두가 함께 목도한 역사의 역동적 전개를 되새겨 볼 때 이 같은 물음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의미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진보'의 사전적 개념 정의는 '역사적 법칙에 들어맞는, 앞으로 있어야 할 사회상을 지향하며 인지를 개발하고 사회를 개선해 나감'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90년대에 있어서 역사의 합법칙성에 조응하는 미래사회상은 어떤 것이어야 하며, 이 것을 지향하는 세계관과 이행전략 및 실천방법은 무엇인가?" 이것이 '90년대 진보의 개념이란 무 엇인가?'라는 질문의 요지라고 봅니다. 이같은 질문이 지금 무의미한 까닭은 중국의 천안문 사태 와 동구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및 소연방의 해체로, 혁명적 세계관에 기초한 탈자본주의 이행전략 이 전면적으로 폐기 내지 수정되어져야 하며, 미래사회상으로 그려졌던 사회주의 사회 역시 백지 화되거나 또는 재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점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주지하고 있다시피 현실자본주의에 대한 탁월한 분석가이자 비평가였던 맑스조차 미래 사회의 윤곽을 그리고, 이행전략을 추출할 때에는 철학적 추상화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 다. 그란 그 결과 그의 가설은 빗나갔습니다. 하물며, 식견과 연륜이 짧은 본인이야 어떠하겠습니 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는 함께 공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류가 모진 시련 속에서도 함께 꿈꾸어온 보편적 가치와 그 가치의 구현체로서 그려보 는 미래 사회상에 대한 것입니다.
첫째, 인간이 모독당하고, 노예로 되고, 버림받고, 경멸적인 존재로 되어있는 모든 상황 - 민족 적·인종적·계급적·성적 상황 - 은 철폐되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사람의 존엄성과 인권은 옹호되는 사회이어야 한다.
둘째, 권력과 재화의 중앙집중화는 지양되어야 하며, 지역분권에 기초한 주민 자치민주주의가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자발적이며, 평등한 협동체(공동체) 속에서 만개되는 사회이어야 한다.
셋째, 지구자원의 무모한 남용과 생태계 파괴는 지양되어져야 하며, 인간과 더불어 생명있는 모 든 것은 조화와 균형 속에서 공생·공영할 수 있는 사회이어야 한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지면관계상 줄이겠습니다)
이같은 미래사회를 지향하는 세계관은 인간중심주의, 이원론, 기계론 그리고 원자론적 세계관이 어서는 곤란하고, 생명중심주의, 일원론, 유기체적, 전일적 세계관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탈자본주의 (또는 탈산업주의) 이행전략은 중앙집권적 권력의 중심을 약화시키고, 독점의 강화 를 막아내면서, 생물지역적 단위의 지역공동체, 주민 자치 공동체로 권력을 분산 이동시키고, 다 양한 공동체 (코문)의 생성을 촉진하는 한편 이미 생선된 공동체를 강화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 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행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공동체와 공동체(코문)는 그물망(네트워크)으로 연결되어져야 하며, 상호 개방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어야 바람직합니다.
실천은 지역주민운동, 생태계 보호운동, 여성해방 운동, 평화운동, 대안(창출)운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정치적 또는 사회경제적으로 현실 참여적인 대안 문화 창달에 힘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육, 문예, 의료 등 등의 대안문화는 생활 공동체, 생산 공동체, 분배 공동체 등 다양한 코문의 생성 및 강화에 참여하고자하는 의욕을 북돋게 하는데 한 몫을 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활력과 공동체 상호간의 연대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나아가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수양과 성숙,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로운 발전에도 자양분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안문화는 개 인의 해방과정을 도우며, 새로운 형태의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학습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데 밑 바침이 되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뜻있는 미술인들은 스스로의 지역에서 지향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대안문화 창조에 동참 하시길 권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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