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국새 사기사건으로 본 인장의 역사와 의미

국새(國璽·국가의 도장) 사기사건이 발생하면서 인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장에는 국가의 존엄을 상징하는 국새와 공권력을 상징하는 관인, 개인을 상징하는 사인(私印)의 세 종류가 있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이들을 포괄하는 상징적 의미는 ‘권위와 신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새 사기사건은 우리가 ‘상징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국새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 국새 사기사건 말고도 공무원들이 관인을 위조해 사익을 챙긴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개인 인장의 신뢰 추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인장에 대한 믿음 상실 현상은 현대사회의 인간에 대한 신뢰 추락과 맥을 같이 한다.
 
인장에는 새(璽)와 인(印)이 있다. 새는 천자의 인장을 일컫는다. 보(寶)로 부르기도 했다. 인은 신하와 백성의 인장이다. 신하가 쓰는 인장은 관인이고, 백성이 사용한 인장은 사인이다. 조선시대 때 관인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왕족이나 관청에서 사용하는 것을 인(印)이라고 불렀고, 사법 부서와 군 조직에서 사용하는 도장을 장(章)이라고 일컬었다.

대한제국 수립후 사상 첫 국새 제작
국새는 권위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삼국유사>에 보면 환인의 서자 환웅은 천부인(天符印) 3개와 3000명의 수하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고조선을 세운다. 여기서 천부인은 통치권을 위임 받은 신기, 즉 국새인 셈이다. 기원전 2세기께 부여에서 ‘예왕지인(濊王之印)’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증보문헌비고>에 남아있다. 또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국왕이 바뀔 때마다 국새를 왕이 후임자에게 손수 전했다고 한다. 고려 때는 왕의 인장을 관장하는 ‘인부량’이란 관직을 두었다. 고려와 조선은 ‘고려국왕지인’ ‘조선국왕지인’이라고 적힌 인장을 썼다. 중국 천자가 내려준 것이다. 명실상부한 우리의 국새를 만든 것은 대한제국 수립 이후다. 대한국새, 황제지새, 황제지보 등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건국 후 은으로 삽살개 장식을 한 제1세대 ‘대한민국지새’가 탄생했다. 글자는 한자로 쓰여졌다. 1963년에 만들어진 제2세대는 처음으로 한글로 글자를 새긴 국새(대한민국·전서체)다. 손잡이는 은으로 거북을 장식했다. 정부 수립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제3세대는 2세대와 마찬가지로 한글로 ‘대한민국’이라고 새겼다. 인뉴(손잡이)는 봉황으로 만들었다. 제4세대 국새는 사기사건에 휘말리면서 국가의 위신을 추락시킨 채 생명을 다했다.

관인은 종류와 용도가 다양하다. 기초자치단체의 관인을 예로 들자면 계인, 관인, 직인, 청인, 특수관인 등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 중앙부처로 가면 종류는 더 많아진다. 직급에 따라 관인 즉 직인의 크기는 법률로 정해져 있다. 대통령 직인이 3.6㎝, 장관은 3㎝, 광역자치단체장은 2.7㎝, 기초단체장은 2.4㎝, 동·이장은 2.1㎝로 직급이 낮아질수록 직인의 크기는 작아진다. 가장 작은 것은 1.8㎝로 최일선 행정부서에서 사용한다. 가격도 각양각색이다.

지자체가 사용하는 인장은 몇 개나 될까. 지자체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수백개가 넘는다.

예컨대 1995년 전북 익산군과 이리시가 통합돼 출범한 익산시는 수우각(소뿔도장) 435개, 목각 312개 등 모두 747개의 도장을 새로 팠다. 개당 1만4000~6만원이었고, 통합에 따른 인장 조각비만 1900만원의 예산이 소모됐다.

공권력 상징 관인 지자체별 수백개
한국 최초의 인장 명인 최병훈씨도 행정당국이 사용하는 도장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1985년 서울시에서 독립한 서울시상하수도건설본부의 직인을 만들게 되면서다. 최씨는 “납품 과정에서 서울시 담당공무원이 ‘회계직인만 부탁한다’고 해서 ‘그까짓 것 몇 개나 될까’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는 ‘맡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상하수도건설본부 산하 한강관리사업소만 무려 860곳이더라”고 회고했다. 그는 “지금은 더 많은 인장이 사용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시대의 관인도 다양했다. 예컨대 관청의 이름이 새겨진 ‘관청인’이 있었고, 관직의 이름이 새겨진 ‘관직인’도 있었으며, 국왕의 결재 여부를 나타내거나 공문서의 서식을 나타내는 관인과 각종 패와 목제 물품에 불로 달구어 사용하는 낙인(烙印·불도장) 등이 있다.
 
한학자 정무연씨는 “조선시대의 관인은 각종 조직과 기구 등의 변화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공식문서에 인장이 사용된 것은 100년이 조금 넘는다. 조선조 고종 33년(1896년) 내부(지금의 내무부) 부령 제8호로 반포된 호국사세칙에 ‘도장’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사인(私印) 하면 컴퓨터로 제작한 나무도장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컴퓨터로 5분 만에 만든 것은 인장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돈은 빌려줘도 인장은 빌려주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인장은 곧 그 사람의 얼굴이며 신표라는 뜻으로, 그만큼 소중하다는 얘기다. 소중한 만큼 훌륭한 인장을 간직하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이다. 명품 인장은 명장과 좋은 재료가 만날 때 가능한 일이다. 인장 재료는 목재, 옥, 상아, 보석 등 다양하다. 목재도 회양목, 박달나무, 돌배나무, 먹감나무 속, 앵두나무, 대나무 뿌리, 대추나무 등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최고의 인장 재료로는 벽조목(벼락 맞은 대추나무)을 꼽는다. 벽조목은 구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인공 벽조목이 등장했다. 

 대추나무에 고압전류를 통과시켜서 벼락 맞은 효과를 얻는 것이다. 진짜 벽조목 못지 않은 재료로 계혈석(鷄血石)이 있다. 닭처럼 생긴 중국 땅 모양에서 ‘계’자를, 이 돌의 빛깔이 맑은 핏빛이 나는 데서 ‘혈’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윤종문 보인당 대표는 “계혈석은 중국 황산 근처 일부 지역에서 난다. 중국 정부는 계혈석의 불법채굴을 막기 위해 보초병까지 동원하고 있다. 계혈석 인장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청나라 황제 백옥도장 경매가 139억
인장의 최고 가격은 얼마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는 게 보통이라서다. 제4대 국새 사기사건의 장본인 민홍규씨가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국새 모양의 인장을 40억원에 팔려고 내놓은 적이 있다. 물론 이것은 최근 재료비가 200만원밖에 들지 않은 가짜로 판명된 바 있다. 지난 4월 소더비 홍콩 경매에서 청나라 건륭제가 ‘태상황제(太上皇帝)’라고 이름을 붙인 백옥도장이 9386만 홍콩달러(약 139억원)에 낙찰됐다. 인장 경매 사상 최고가다.

가장 큰 인장은 서예가 김제인씨가 해남산 납석으로 만든 낙관으로 가로, 세로가 각각 15㎝, 높이 25㎝, 무게 10㎏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最古)의 도장 역사는 기원전 3100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메르인이 신들의 이름을 새긴 원통형 도장이 발견된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전 2000년께 황금충 모양의 석인(石印)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발한 인장이 개발되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젤형의 인장에 봉인해 만들어주는 탯줄도장이 최근 유행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인장의 겉모양이 어떻게 변하든 ‘신뢰의 상징’이라는 인장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출처: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5&art_id=201009141714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