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탁족]- 옛어른들의 여름나기 (03_01_artp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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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 옛어른들의 여름나기  

탁족이란 말은 글자그대로 발을 씻는다는 뜻인데 조선의 선비들은 관념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강과 계곡에서 ‘탁족지유’의 풍류를 즐겼습니다.

조선 시대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유월조(六月條)에, “삼청동 남북 계곡에서 발 씻기 놀이를 한다.”  (三淸洞……. 南北溪澗 爲濯足之遊) 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국세시기》가 당시의 풍속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아 탁족놀이가 일부 특수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여름 풍속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일반 서민들에게 있어서 탁족놀이는 단순한 피서의 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지만, 선비들에게 있어서는 피서의 차원을 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즐겼던 피서 방법에는 ‘탁족’ 외에도 ‘물맞이’나 ‘목물하기’등 여러 가지가 있었겠으나, 그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오직 ‘탁족지유(濯足之遊)’만을 소재로 그림으로 그리고 또 감상하기를 즐겼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비들이 특별히 ‘탁족지유’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는 중국 고전인 《초사 楚辭》의 내용과 관련이 깊습니다. 《초사》 어부편(漁父篇)을 보면 어부와 굴원(屈原) 사이의 문답을 서술한 마지막 부분에,

“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노를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라고 하면서 사라지니 다시 더불어 말을 하지 못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부분을 특별히 〈어부가 漁父歌〉, 또는 〈창랑가 滄浪歌〉라 이름 지어 불렀는데, 이 노래에 나오는 ‘탁족’과 ‘탁영(濯纓)’이라는 말을 특별한 의미로 새겼습니다.



<창랑가〉가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맹자는,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니, 이것은 물 스스로가 그런 사태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淸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 라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것을 다시 인간의 삶의 태도에 비유하여 말하되,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욕되게 한 뒤에라야 남이 그를 모욕하고, 가문은 반드시 그 자신들이 파괴한 뒤에야 남이 그 가문을 파괴하고, 나라는 그 자신들이 망친 뒤에야 남이 그 나라를 토벌한다. 그러므로 태갑(太甲: 書經의 편명)에 ‘하늘이 지은 재(災)는 그래도 피할 수가 있으나, 자기가 지은 재는 모면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런 점을 두고 한 말이다.”

《孟子》, 離婁  

맹자는 〈창랑가〉의 의미를 행복이나 불행은 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처신 방법과 인격 수양 여부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던 것입니다.

맹자다운 해석입니다. 하지만 우리 선비들을 조금 다른 해석을 하였습니다.

탁영탁족의 의미를 즉, 창랑의 물이 맑다는 것은 도의(道義)와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말함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다는 것은 도의가 무너진 어지러운 세상을 비유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다’는 것은 ‘세상이 올바를 때면 나아가 벼슬을 한다’는 뜻이요, ‘발을 씻는다’는 것은 ‘풍진에 찌든 세상을 백안시하고 은둔하며 고답을 추구한다’는 의미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탁족은 언제든지 강호(江湖)로 돌아가서 살수 있는 선비의 이상향이자 선비 자신의 내면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옛 어른들은 더위를 이겨내면서도 우주와 세상의 진리, 자신의 내면에 대한 통찰, 지식인의 참다운 책무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내년이면 지방 자치단체 단체장 및 지방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 창랑의 물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지금 나아가야 할 때 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이상향을 갈고 닦아야 할 때 입니까?  

옛그림 하나 같이 감상 하고 싶습니다.



이경윤의 <고사탁족도>

이경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아주 험악한 시대를 살아왔던 인물입니다.

전쟁으로 무수한 생명을 죽어 가는걸 보았고 실제로 먹을 게 없어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죽은 시체를 서로 뜯어 먹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이야기되는 사회는 분명 당시 성리학적 가치를 추구했던 선비에게, 더욱이 자연과 벗 삼기를 좋아했던 이 경윤에게는 충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확실히 깨달았던 이 경윤은 세상사는 데는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즉 이 풍진 세상에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선비가 흐르는 물가에 앉아 있습니다. 얼마나 더운지 웃옷을 풀어 가슴이 휜 하게 드러내놓고 있고 무릎 위까지  바지를 올린 다리는 꼬아 물에 담그고 있습니다. 약간씩 움직이는 다리 때문에 물은 물결이 치고 머리위로는 나뭇가지가 뻗어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전란을 힘겹게 이겨낸 어린 동자는 술병을 들고 있고 선비는 그 어린동자를 대견하다는 듯, 한편으로 안됐다는 듯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습니다.

  
<고사탁족도> 풍진세상에 대한 절망, 자신의 그리운 고향에 대한 동경..자신의 이상향을 향한 선비의 고귀한 정신이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탁족]은 제게 오늘날 아무리 더워도 마음은 서늘하게 만드는 그 무엇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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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cat 2005/07/30 reply  
절파화법의 대가 이경윤 선생 작품이군요. 그런데, 저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선비가 중국인 이라는 것(복식과 머리모양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물의 뒤로 배경이 되는 경물을 한 쪽으로 치우치는 기법 - 절파풍(浙派風)이라고 명나라에서 들어왔죠 - 을 너무 그럴듯하게 구사한 점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비단 이경윤선생 뿐 아니라 절파법이고, 곽희파고 부벽준이고...조선 후기에 이런 그림 그렸던 작자들 몽땅 다! --;;)
베껴도 정도것 해야죠. 중국회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중국의 남송대 이래로 명대 회화까지 이런 부류의 그림들은 차고도 널렸습니다. 선진대국의 기술이전을 받는 걸 뭐라 하는게 아닙니다. 그래도 엄연히 창조성이 생명인 예술작품을 만드는데, 기법은 들여와도 나름대로 창조가 있어야죠. 한복을 입고 있는 선비를 그렸다던가 아니면 경물배치법은 따라해도 풍경을 조선의 풍경들로 대체한다든가....뭐 기타 이런 노력이 보여야 하는데, 이런 부류의 작품들에서는 기교적인것 외에는 당최...--+
언젠가 중국 남송대 이래 명나라까지 작품선을 보고 있는데 문인화 그룹에 이런 부류의 그림들이 널렸더군요. 순간 얼굴이 다 붉어지더이다.--;;

거기다 조선 후기에 이런 중국의 보수적인 화풍이 사대부들 사이에 유행했다는 것 자체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조선후기가 어떤 때입니까. 두 차례의 대난리를 겪은 이후 안팎으로 체제자체에 대한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조선의 사대부들이 어떤 길을 선택했었는지 - 뭐 다들 아시겠지만 -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림들이라서 볼 때마다 속이 편하지는 않더군요.

풍진세상에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나쁜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학문에 뜻을 둔 선비라면 더 할 나위 없었겠습니다만. 조선의 후기 정치체제에 대해 - 그 견고한 소중화주의와 치열했던 당쟁에 대해 떠올리신다면 -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얘기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느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두 차례의 혹독한 전란에서 상상을 초월한 무능력을 보여준 조선의 사대부들이, 결국은 한치도 변화하지 않고 기득권을 챙기면서 조선사회에 대한 지배권을 놓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죠.
좀 웃기는게 남송대 이래로 거벽산수화(길이가 수십 미터가 되는 대작들이죠)와 이를 잇는 문인화들이 갖는 기능이 당시 사대부들의 '판타지' 였다는 겁니다. 몸은 정계의 치열한 권력다툼에 담겨있지만, 정신은 소위'자연'에 가 있다는 거죠.
뭐 나름대로 이들의 고민에 공감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조선같은 내향적인 국가가 안으로는 너무나 혹독한 권력싸움을 일삼았다는데 좀 뷁스럽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그런 작자들이 저런 부류의 그림들을 너무 좋아해서 수 백년동안 온통 무채색인 그림밖에 없는... 참 독특한 회화문화를 낳았다는 것도 그렇구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예술작품을 좋아하는 것과 이런 식의 해석은 별개의 것이니...그냥 이런 평도 있나보다 생각하시길. --;;
손태호 2005/08/01 reply  
옛그림을 보면서 옛사람의 눈으로 보는게 가장 좋은 자세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눈과 시각을 가지고 평을 하자면 끝이 없고 불만스럽지 않은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 당시의 화풍을 기준으로 보면 중국식 화풍을 따라 그리는건 전혀 비판 받을 부분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안그러는데 이경윤만 그랬다면 비판 받을만 하겠죠...당시 탁족의 그림중 인물부분 다리를 꼬고 웃웃을 풀어헤쳐 있는 모습은 거의 모든 탁족도에 있는 정형화된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부분 보다는 탁족도는 보통 한 인물만 그리는데 반해 이 탁족도는 동자가 등장 하고 있습니다..전 이부분이 고사탁족도가 다른 탁족도와 다른점이라 생각합니다.
당쟁이 있던 시기이기에 그와 상반된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는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까요?
그렇다면 죽고 죽이는 전쟁터 장군은 사랑을 이야기하면 안되는걸까요?

저는 가능하면 그 작가의 마음으로 그림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물론 쉬운일은 결코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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