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t: 1298

변화된 정서와 미술운동  변화된 정서와 미술운동   권산(미술평론가)   1. 전환기, 위기 따위의 용어들이 진보적 문예운동 진영에서 쟁점화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 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관심의 고조는 말할 것도 없이 세계사적 격변으로 일컬어지는 사회주의 권의 변화와 냉전 체제의 종식이라는 국제사회의 변동과, 6월 항쟁 이후 줄곧 정세의 고비를 틀 어쥐지 못하고 지배진영의 변화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민족민주진영의 안타까움으로 대변되는 남한 정치질서의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기름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다. 논쟁의 건강성과 생산성을 일단 제껴두고라도 새것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 문예의 속성상 한차례 홍역을 치루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미술운동진영이 이러한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 다. 이지점에서 다시 미술운동에 있어 진보란 무엇인가를 논한다는 것은 오히려 변화의 핵을 흐 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변화는 발전이라는 말과 변증법적으로 맞물려 있는 것인데 이 것에 대해 유독 당대의 현상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는 듯한 '논쟁의 잔치'는 실천보다는 해석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부여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중에게 이로운가?" 여기에 전체 변혁운동 그리고 그 한 갈래로서 미술운동에 있어 진보에 대한 해석과 실천의 잣 대가 있다고 확신한다. 대중이라는 용어로 대신해도 좋을 이 말을 필자는 굳이 민중이라는 용어 로 고집한다. 최근 일련의 이론활동에서 보여지는 '대중성'이라는 용어의 사용에서 나타나곤 하는 그 주체의 불명확성과 탈정치화 된 용어처럼 둔감해 버리곤 하는 현상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대 중이라는 용어의 물리적 개념이 가지고 있는 변혁적 알맹이는 아무런 변함이 없는 것이다. 최근 일련의 맥락을 가지면서 던져지는 진보성에 대한 개념의 혼란과 문화지형의 변화 운운하는 질문 의 본질을 개인적으로는, 남한사회에서 변혁은 가능한가 라는 질문으로 이해한다. 논쟁의 출발과 끝은 항상 이 고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적 이해를 바탕으로 직설적인 대답을 요 구 한다면 원론적 의미의 변혁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 범주의 한 갈래를 담당하는 미술운동의 변 혁적 역할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답 속에는 미술운동에 있어 원칙적 의미의 진보개념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수정의 가능성은 전략보다는 전술에 많이 두어질 것이다. 전술의 변화조차 부정한다면 시대착오적 발상에 빠진 원칙주의자라는 화살을 피할 수 없을 것이 다.   2. 미술운동은 당파성을 가진 운동이다. 이것은 변함없다. 그것이 노동자계급당파성이건 민중당파 성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사회변혁에 대한 미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너뜨려 야 할 대상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운동에 있어 정치성의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한 정치의 지형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회관계속에서 계급적 민족적 대립구도는 여전하다. 다수 의 수구세력과 소수의 보수세력으로 구성된 연합권력이 구체제와의 연속선상에 온존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미술운동의 정치투쟁적 의미, 미술운동 자체의 진보성의 의미를 확인시켜주는 객 관적 조건이다. 반동보수군부 정치에서 민간엘리트 정치집단으로의 전환과정에 있다는 사실만으 로 남한 정치질서의 근본적 변화, 나아가 미술운동의 근본적 전략수정을 거론할 수는 없다. 이러 한 변화는 여전히 민중배제의 원칙하에서 진행되고 있다. 민중을 주체로, 민중의 이익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는 객관적 사실이 민중이 사회변혁의 전면으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운동의 필연적 존재'를 웅변한다. 이것이 미술운동의 정치 투쟁적 의미와 진보의 개념을 확인시켜주는 주체적 조 건이다. 미술운동은 여전히 당파성을 가진 운동일 수 밖에 없다. 80년대 미술운동은 뚜렷한 대치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정치적 대치선이 뚜렸했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를 이루고 있다. 선택의 폭은 대단히 협소했고 지배진영을 도덕적으로 고립 차단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웠다. 대중의 의식은 비교적 명표했다. 문민정부로 정리된 93년도 한반도 지배질 서는 대중들의 정치적 의식을 비무장지대로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이 미술운동 진영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로 미술등의 위기를 입증할 수는 없다. 80년대를 이끌 어 온 운동의 주요한 힘이 도덕적 의무감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존재가 운동을 결정한다. 비무 장지대를 이룬 지역에서 많은 대중들이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현 정권의 강점은 이런 대중의 등 뒤에서 같이 팔장을 끼고 민민진영을 바라볼 수 있는 절차성과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는데 있 다. 언론정책을 통해 이들은 대중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환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배진영이 시도하고 있는 개혁의 폭과 깊이, 진실성이 지 극히 전술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변혁운동 진영의 반응은 전략의 변화 운운하는 지졍에 이른다면 그것은 지나친 조급성이다. 진보라는 것은 인간사회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 가는 것을 목적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인데, 그것은 항상 근로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기반으로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해 왔다. 진보개념에 대한 논쟁은 이러한 현실적 요구가 해결된 뒤에 야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전략적 전환기와 전술적 전환기를 구별하는 것이 중 요하다.   3. 합법화, 합법술에 대한 논란이 93년 벽두를 스치고 지나갔다. 변화된 정치정세 속에서 제기되는 합법화 내지 합법술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예민한 부분이기도 하다. 모든 운동은 합법화 되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을 위해서 과정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합법화의 시기와 어떤 내용을 가진 합법화인가 라는 것이다. 시기와 내용은 객관적 조건과 주체 의 준비정도가 결정하는 문제이다. 합법투쟁은 광범위한 대중을 인입할 수도 있지만, 투쟁의 내용 이 지배진영의 법률이 허용하는 선까지 가능하다는 제한성을 가지기도한다. 어느 한 측면만을 중 심으로 생각할 때, 좌우편향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앞에서도 이미 밝혔지만 모든 결정은 '그것은 민중에게 이로운가'라는 잣대로 판단되어야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개량주의와 합법주의다. 중요한 것은 개량과 합법을 이용하는 방법이지 결코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술운동의 폭과 깊이를 강화하기 위해 합법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량과 타협을 변혁적으로 이용하는 본질이다. 합법화 그 자체가 대안은 아니다. 그 자체 의성사에 집중할 때 대중과 투쟁은 분리된다. 지배진영은 미술운동의 합법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지배진영의 목적 이 미술운동 진영의 목적과 동일하지는 않다. 합법이라는 틀 속에서 미술운동을 제도화 박제화 시키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일 것이고, 열려진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미술운동 진영의 목적일 것 이다. 그 속에서 지배진영이 통제하려는 내용이 발생할 때, 합법투쟁의 한계외 지배진영의 한계가 동시에 나타날 것이다. 그 지점이 바로 미술전선이고 미술운동에 있어 진보의 개념을 더 이상 절 충할 수 없는 지점이 될 것이다.   4. 최근 미술운동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장되고 있는 매체에 대한 관심과 실험작업들이 활발하다. 이 뿐만 아니라 전통적 회화양식(따블로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에서도 자유로운 형식실험이 진 행되는 듯하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형상은 아니다. 20세기 초반 다다를 시작으로 뒤샹을 관통해 서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현대회화사가 그러했다. 또한 80년대 민족미술형식논쟁이 보다 포괄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진보적 미술운동진영에서 거론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은 형식에서의 진보(자본주의 문예 자체의 메카니즘은 일단 무시하고)를 미술운동의 진보로 대체하려는 경향을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반성 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80년대 미술운동의 대표적 창작방법론인 리얼리즘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 서 출발한다. 이러한 발상은 80년대 미술운동을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관점 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남한 미술운동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자칫 미술운동을 모더니즘의 우월이라는 골목싸움으로 만들어 버릴 소지가 있다. 문학예술에 대한 평가가 이런 식으로 내려진다면 미술운동은 사조운동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을 가장 열렬히 꿈꾸는 사람들이 바로 지배진영이 아니던가? 정치투쟁이라는 알맹이가 녹아 있는 사상성이 거세된 미술운동. 결국 이러한 현상은 곧 다가올 새로운 진보(?)에 밀려나거나 새로운 이론의 옷을 입을 것인데, 이것이 Next modernism이 되건 Post realism이 되건 그다지 중요치 안핟. 그것이 언제나 보아왔 던 자본주의 문예의 생존방식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려느이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남한 모더니 즘 미술이 모더니즘의 본질 중 주요한 요건의 하나인 현실 비판적 성격을 찾아가고 있다는 긍정 적 측며을 주목하고 싶다. 사실은 이조차 80년대 미술운동이 이룬 성과의 하나이다. 남한에서 미 술의 사회참여에 대한 논쟁은 진작에 결정난 것이다. 어쩌면 이 명제의 획득이 80년대 미술운동 의 가장 큰 성과일지도 모른다. 진리로 판명된 명제가 다양한 관점에 의해 활둉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설득력이다. 이것은 리얼리즘을 창작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는 화가들에게도 적용되 는 과제이다.   과학기술혁명에 힘입은 각종 매체의 등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그 매체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그것을 미술운동의 영역에서 장악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을 우선으로 한다. 그 첨단의 기술력을 앞세운 영상매체보다 80년대 미술운동이 확보하고 장악한 판 화와 걸개라는 매체는 남한미술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중요한 것은 매체와 결합된 미술대중활동 방식이 그 매체의 위력함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화랑과 출판을 통 해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잇는 미술운동의 새로운 대안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때, 여전히 화랑과 책속에서 박제된 진보를 외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5. 변역운동 이념의 흔들림이 아무리 심하다 할지라도 조직을 건설하고 선전선동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상황하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오히려 지금 이것이 장조된다. 절실하게 조직과 대중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이것을 준비하는 것은이미 늦은 것이다. 전환기, 위기, 진보란 무엇인가 라는 따위의 질문들은 결구 미술운동의 혁신을 그 목적으로 한 것이다. 이것은 미술운동 내부의 발전노리이기도 하다. 잣대는 하나이되 그 운영을 풍부히 하는 것으로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 잣대 자체까지 거론하면서 효과와 운용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할 때 지나간 시기의 성과는 한줌도 남을 수 없을 것이다. 남한사회에서 미술운동을 시작한 이후, 한시라도 그서이 만만했던 적이 잇었던가? 그만큼 역사가 만만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 는 것이리라.   문예가 인간학이라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인간본성을 실현시키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미 술운동의 존재와 변혁을 알갱이로 하는 진보적 본성은 흔들림 없을 것이다. 변화해야 하는 것돠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작업이 그래서 힘들고 중요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