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태안에 좀 가보세요”
“당신 태안 주민이야?”
“태안에 좀 가보시라구요!”

7일(금) 낮 12시경 강남 삼성중공업 본사 앞에서는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삼성중공업의 ‘무한책임’을 요구하는 1인 시위에 참여한 서울민미협 전미영(조각가) 대표가 점퍼의 오리털을 이용해 무한책임이라는 글자를 만들자, 삼성중공업 관계자들이 나와 깃털이 회사 안으로 날린다며 화를 냈기 때문이다.

전미영 대표는 “태안에는 당신들이 만든 기름으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됐다”며 “이건 기름도 묻지 않은 깨끗한 오리털”이라고 맞섰고, 삼성중공업 관계자들은 “아무리 그래도 회사에 피해를 주면 안 되지 않냐”고 따지다 급기야 경찰을 불렀다. 하지만 1인 시위를 지켜보던 경찰은 3분도 안 돼 자리를 떴다.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전미영 대표가 참여한 1인 시위는 ‘서해안 기름유출사고 법률봉사지원단’이 지난 2월 11일부터 삼성중공업의 무한책임을 요구하며 진행하고 있는 무기한 릴레이 1인 시위다. 법률봉사지원단은 다양한 학교의 법학 및 비법학 전공자들과 사업연수원생 200여 명으로 구성된 자발적 봉사단체로, 지난해 12월 발족한 이래 태안 현지에 법률 상담소를 개소해 주민들에게 법률 상담을 제공하고 피해입증방법을 홍보하는 소식지와 1인 시위를 통해 지속적으로 쟁점화하고 있다.

이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1인 시위에 나선 전미영 대표는 이날 황동 조각상과 검은 잉크, 대형비닐, 오리털점퍼, 매직 등을 준비해 길거리로 나섰다. 본사 앞 공간에 자리를 잡은 전 대표는 대형비닐을 길쭉하게 펴고 그 위해 조각상을 세웠다. 그리고 기름을 상징하는 검은 잉크를 그 위에 붙는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기름은 머리에서부터 바닥으로 흘렀다.

조각상 퍼포먼스에 이어 전 대표는 오리털을 이용해 비닐 위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ㅁ’으로 시작한 글자는 ‘임’을 만들고, ‘ㄱ’으로 시작한 글자는 ‘책’을 만들면서 ‘무한책임’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전 대표는 “오리털은 기름유출 사고로 죽은 천둥오리들을 상징한다”고 했다.

오리털로 씌어진 ‘무한책임’ 옆으로는 ‘태안’- ‘삼성중공업’ ‘태안주민들을 잊지 마세요’라는 글자가 씌어졌다. 전 대표는 “태안 주민들의 생계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도 남대문 화재 이후 많은 국민들의 마음에서 잊히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며 “태안 주민들의 문제가 각인돼 그들이 실질적인 도움이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작업을 통해 알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 대표는 1인 시위를 마치면서 “태안 주민들을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다시 한 번 부탁했다.

강남 삼성중공업 본사 앞을 지나던 많은 시민들이 전 대표의 작업을 관심있게 지켜봤다.

한편 이날 전 대표의 1인 시위를 묵묵히 지켜보던 양기철(29, 직장인) 씨는 “어떤 문제든 그렇지만 태안 역시 유출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유행처럼 몰려갔다가 또 금세 잊는 것 같다”면서 “(삼성이) 책임질 것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위 현장에 함께 있었던 나규환 서울민미협 사무국장은 “국립공원을 망가뜨려놓고 1인 시위자에게 당신 태안 주민이냐고 묻는 것은 너무 웃긴 일”이라면서 “지금이라도 보다 성실한 자세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나서달라”고 삼성중공업에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