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5일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빛의 화가-모네' 전시 개막식에서 관람객들이 모네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경향신문>

국립현대미술관을 포함해 우리나라에는 19개 국공립미술관(지자체가 설립한 미술관을 공립미술관이라고 한다)이 있다. 이곳의 역할에 대해서는 1991년 제정한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에 잘 나타나 있다. 진흥법 제2조에는 ‘미술관이란 문화·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조각·공예·건축·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공성의 역할을 주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등을 제외하면 대다수 공립미술관이 공공성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에는 규모와 재정, 그리고 인력 면에서 열악한 수준이다. 국공립미술관의 현황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매년 발간하고 있는 ‘미술관백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국공립미술관이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자체 기획전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학예사(국공립미술관에서는 큐레이터 대신 학예사라고 부른다)가 부족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06년 현재 공립미술관에는 학예사(자격증 소지자 및 미소지자)가 63명인 데 반해 기타 직원이 187명이나 된다. 관리직 직원이 학예사보다 훨씬 많다. 미술관을 학예사 중심이 아닌 일반 직원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말이다.

학예사 63명에 일반직원 187명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박수근미술관의 전경. <경향신문>

학예사가 적다는 것은 전시기획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기획전시를 하지 못하는 곳은 대관전시나 소장품 상설전시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 한국큐레이터협회 장동광 부회장은 “미술관의 꽃은 큐레이터다”라면서 “하지만 큐레이터를 교육하고 키워내는 저변이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블록버스터전도 학예사의 능력을 죽인다는 비판이 많다.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색채의 마술사-샤갈’전에는 5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밀려들었다.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방학숙제를 하기 위해 부모와 함께 미술관을 찾은 것을 감안해도 50만 명의 관객은 그동안 미술관에서 상상하기 힘든 관객수다. 샤갈전의 대성공 이후 몇몇 국공립미술관에서는 수익도 올리고 미술관의 인지도도 넓히는 블록버스터전을 유치해오고 있다. 블록버스터전은 외국의 유명한 작품을 국내에 소개한다는 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전시회를 국공립미술관 자체 능력으로 열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수십 억 원에서 10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2007년 예산은 270억 원 정도다. 그중 전시예산이 15억 원, 작품구입비로 50억 원 정도를 사용한다. 기업의 후원이 활발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블록버스터전을 열려면 자본을 끌어오는 기획사가 참여할 수밖에 없다.

수익을 올리기 위해 관람료도 덩달아 1만 원 이상으로 오른다. 방학숙제를 하기 위해서 아이와 함께 부모가 전시회에 가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장동광 부회장은 “국공립미술관이 관람료는 적게 받는 것이 좋다”면서 “국공립미술관의 관람료가 부담이 돼서 가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꼬집는다.

학예사 능력 죽이는 블록버스터전 기획사나 언론사 등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기획전시가 많아질수록 학예사의 역할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방의 공립미술관 현황을 살펴보면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직원 4명 중 학예사 1명, 직원 5명 중 학예사 1명, 관장을 포함해 직원 3명 중 학예사 1명이 있는 곳도 있다. 심지어 벽천미술관에는 일반 직원 없이 학예사 1명만 근무하고 있다. 학예사의 열정과 희생 없이는 기획전시를 하기 힘든 셈이다. 심지어 공립미술관 중에는 자격증을 소지한 학예사가 한 명도 없는 곳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분관인 덕수궁미술관은 학예사의 열정과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전 직원 10명 중 학예사가 3명이다. 하지만 2006년 열린 ‘롭스와뭉크-남자와여자’전에는 6만 명의 관람객이 들었고, 2007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전’ 역시 큰 성공을 거뒀다. 덕수궁미술관의 최은주 관장은 “학예사 개개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 있게 배려하기 때문에 이런 성공이 가능하다”면서 “숫자도 중요하지만, 학예사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학예사의 능력을 키우려면 디렉터십 즉 관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최 관장의 이야기처럼 미술관을 운영하는 데 관장의 역할은 매우 크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김윤수 관장이 ‘책임경영제’를 내세우면서 기업식으로 운영성과를 평가해 반영하는 모습은 미술관도 마케팅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대변한다.

하지만 공립미술관 중에는 미술관장을 지자체장이나 전직 공무원이 맡고 있는 경우도 있고, 명예관장 제도가 있는 곳도 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의 명예관장이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관장직을 역임한 오광수씨는 이중섭미술관의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명예관장이 아무리 능력과 명망이 있다고 해도 미술관을 운영하는 데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70~80대 미술원로가 관장을 맡은 경우도 있다. 이들은 미술가로서 명망가이고 존경을 받지만, 미술관을 책임지고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관장직이 명망 있는 미술원로를 위해 마련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관장 임명에도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명예관장이 있는 미술관의 한 학예사는 “학예사의 역할만 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다”면서 “기획전시를 준비하는 것이 만만찮은 일이기 때문에 1년에 2, 3번 정도만 기획전시를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 학예사가 일하고 있는 미술관에는 직원 4명과 학예사 1명이 전부다.

2006년 ‘미술관백서’에 따르면 공립미술관 자체의 기획전시 횟수가 1년에 1회뿐인 미술관이 경기도미술관, 보성군립백민미술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 있다. 2회인 곳도 두 곳, 10회가 넘는 곳이 6곳이다. 재정, 인력과 규모에 따라서 기획전시 횟수도 달라지는 셈이다.

또한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공립미술관은 무척 취약하다. 공립미술관의 운영 수입은 관람료와 대관료, 도록판매, 기타 수입 등이 포함되는데 수입은 없고 지출만 있는 미술관도 많다.

전직 공무원이 미술관장 맡기도 2006 미술관백서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해 예산은 210억 원 정도다. 그런데 토지 및 건물대여료, 입장료 등 수입은 5억 원에 머물고 있다. 18개 공립미술관의 수입은 총 15억 원. 대관 등 운영 수입이 4억5000만 원, 관람료 수입이 8억1000만 원 정도다. 수입이 많은 대청호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은 관광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벽천미술관, 보성군립백민미술관, 수원미술전시관 등은 시설대관 등 수익사업이 전혀 없고 무료 관람을 실시하기 때문에 자체 수입이 없다. 그렇다고 국·공림미술관이 공공성을 버리고 무리한 수익사업에 ‘올인’할 수도 없다.

이에 대한 대안이 기업의 예술지원제도인 메세나제도의 활성화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18개 공립미술관은 기업의 후원이나 기부금이 거의 없는 상태다. 기획전시를 열거나, 시민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소장품을 구입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재원부족, 인력부족, 관장의 역할 미비가 맞물리면서 미술관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지방 공립미술관의 현실이다. 다행히 도립미술관이나 광역지자체가 설립한 미술관은 형편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